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르지오 파리아스 (문단 편집) === 포항 스틸러스 시절 (2005 ~ 2009) === 당시 포항에서 파리아스를 스카웃 하러 갔을 때 담당자는 한 눈에 '이 감독 뭔가 해낼 것 같다' 는 생각에 그를 구단에 추천했으나 정작 포항 구단에서는 그의 경력과 나이(당시 38세)에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그래서 담당자는 의도적으로 파리아스에 대해 뻥튀기를 해서 구단을 설득시켰다고 한다. 파리아스 취임 전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은 [[최순호]]였는데 당시 포항은 전년도 리그(2004)에서 전기리그 우승으로 후기리그 우승팀 수원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운재]](수원)가 [[김병지]](포항)의 승부차기를 막음으로서 포항은 준우승에 그쳤다. 이미 오랫동안 서포터즈와 구단은 최순호에 대한 감정이 쌓여있었고 결정적으로 이 해 포항은 전기리그는 우승했으나 후기리그에서 꼴찌를 찍으면서[* 이 때문에 전기, 후기 리그의 제도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90년대 포항의 화끈한 공격축구를 기억하는 포항팬들에게 몇년간 포항이 보여준 팀컬러(K리그의 고질적인 수비지향 축구)에 이미 많은 팬들이 포항을 떠난 상태라 포항으로서는 리빌딩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구단도 처음부터 큰 성적을 기대하기 대신 장기적인 안목에서 감독과 스태프를 신뢰했고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한국 축구에 남미 축구의 컬러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전방 미드필더부터 강한 압박으로 상대방을 쉴새없이 두들기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K리그에 도입하여 스틸타카라 불리는 포항의 패스축구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같은 시기의 [[FC 서울]]의 외국인 감독 [[세뇰 귀네슈]]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뻥축구, 수비축구로 대변되던 K리그에 신선한 변화를 몰고 왔다. 더불어 2005년을 기점으로 수비축구에 물들어있던 K리그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한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훈련과 경기에서 수비라인에서 백패스를 일절 금지시킬 정도로 공격적이고 안정적인 경기운영에 포커스를 두었다. 또한 유소년 조련에 일가견이 있어서 2005년부터 꾸준히 키워왔던 신인들의 포텐셜이 폭발했다.[* 당시 포항은 FA로 영입하는 선수는 신통치 않고, 구단에서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사주기는커녕 오히려 뺏기는 일이 계속되자 그냥 FA는 포기하고 감독 스스로 선수 육성에 더 매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욱이 뚜렷한 S급의 스타 선수가 없는 포항의 팀 특성상 포지션별로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여 대부분의 선수를 A급 선수로 만들었다.[* 그 결과 2009 전반기에는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선수들이 몰아넣은 골이 더 많은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아스 감독은 홈, 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출전 선수 명단에서 항상 1명 더 많은 선수를 데리고 벤치에 들어간다. 이후 그 날 선수들의 상태에 따라 1명은 경기 시작과 함께 관중석으로 올려보내는 꽤나 독특하면서도 효과적인 선수 조련법을 썼다.] * 2007년: '''리그 우승''', FA컵 준우승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CL) 우승''', '''피스컵 코리아(컵 대회) 우승'''[* 컵대회는 2011년 러시앤캐시컵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리그 3위[* 리그를 2위로 마쳤으나, 당시 K리그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있었다. K리그 챔피언쉽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으나 성남 일화에게 0-1로 일격을 당해 아쉽게 시즌 더블에는 실패했다.] K리그, FA컵, 리그컵, AFC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린 외국인 감독으로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유일하다. 더불어 2005년을 기점으로 수비축구에 물들어있던 K리그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한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킨 스콜라리 감독과 당시 우승멤버 히바우두가 이끄는 분요드코르를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1-3으로 패배하고도 홈에서 4-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고국인 브라질에서도 유명해졌다. 이 경기 결과로 브라질 지도자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아시아 클럽들, 특히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클럽들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2004년에도 브라질 유망지도자 4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지는 못했다.] 승리보다는 경기 과정을 중시하며 경기를 이기더라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자기 팀 선수라도 가차 없이 질책할 정도의 실력을 우선한다.[* 일례로 2009 피스컵 코리아 결승 1차전에서는 부산과 지리한 경기끝에 무승부를 기록하자 오늘 경기 평가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보기에 오늘 경기가 결승전 같았나?"면서 포항 선수들을 비평했다. 2009 ACL 결승전 직후 인터뷰에서도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결승전과 8강전을 빼곤 그리 수준높은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본인은 [[포항]]에서 사는게 너무 좋다고 하면서 가족을 전부 포항에 데려왔었다. 보통 K리그 팀을 지도했던 외국인 감독들은 이런 식으로 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적이 없어서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구단에서 재계약 직전 파리아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자동차 에쿠스를 선물했는데, 파리아스 감독은 "감독이 구단 사장보다 더 좋은 차를 탈 수는 없다."면서 몇 번이나 거절했다. 당시 사장이 탔던 차는 오피러스였다. 결국 사장에게 에쿠스를 타게 하고 사장이 타던 오피러스를 파리아스 감독이 가져갔다. 한국문화에도 완벽히 적응해서 인터뷰 중 난처한 질문이 들어오면 웃으며 한국말로 "몰라."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브라질 출신에 포항에서 보여준 성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고, 본인도 피스컵 코리아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인터뷰에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감독으로 나서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맡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냐는 질문에는 웃으면서 한국어로 "몰라."라고 답했다.[[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780336&cloc=|#]]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